이스라엘 성지순례 (3-6) 쿰란동굴
이정원 2020-02-18
이스라엘 성지순례 쿰란
<쿰란 Qumran>
오늘의 마지막 순례일정은 여리고 아래에 있는 쿰란 방문이다. 쿰란은여리고에서 멀지 않은 사해에 인근한 사막동굴 지역이다.
1947년 양치기 소년이 동굴에서 사해문서 (성서의 필사본)를 우연히 발견한 것으로 유명한 곳이다. 기원전 2세기에 유대교의 한 파인 에세네파(Essenes)가 공동생활을 하면서 사해문서를 남기게 된 것이다.
고고학자들은 쿰란의 마을이 기원전 134년에서 104년 사이에 요한 히르카누스 통치 시대에 지어졌다고 추정한다. 티투스 황제가 서기 68년 파괴해 버리기까지 이곳에는 여러 시기에 걸쳐 사람이 살았다. 묘지를 비롯해 회합실과 복잡한 저수지 등 현재 남아 있는 유적들로 미루어 보아 쿰란은 에세네 교파의 거주지였던 것 같다.
특히 4번 동굴이 유명하다
유적 발굴현장
1947년 봄. 베두인의 목동 무하마드 아즈 지브는 양과 산양을 몰고 있었다. 장소는 요르단 강과 예루살렘 사이에 낀 쿰란의 구릉지대. 사해의 북서해안에 해당하는 황폐한 바위산과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이어지는 협곡이다.
열다섯 살의 무하마드는 문득 양 한 마리가 무리에서 뒤쳐진 것을 깨달았다. 주변을 찾아 헤맸지만 어디에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우왕좌왕하다가 그는 머리 위 절벽에,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동굴 입구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곳에 양이 숨어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소년은 양을 놀래켜서 나오게 하려고 주먹만한 돌을 던져넣었다. 하지만 안에서 들려온 것은 무하마드의 기대대로 양이 놀라서 내는 울음소리가 아니라, 도자기가 깨지는 듯한 둔탁한 소리였다.
예루살렘 근방은 고대 때부터 온갖 사람들이 흥망과 생활을 반복해왔던 유적의 보고였다. 당연히 생각지도 않던 곳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보물이…… 간혹 옛날 사람들이 숨겨놓았던 귀금속·보석류가 발견될 때가 있었다. 소년은 기대로 가슴이 벅찼지만 그날은 집으로 돌아가고 다음날 사촌과 함께 동굴 탐험에 나섰다.
오랜 시간 동안 외부 세계와 단절되어 있었던 동굴의 좁은 입구를 통해 겨우겨우 안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의 목동은 그곳에서 깨져 있는 한 개의 항아리와 그대로 남아 있는 여덟 개의 항아리를 보았다. 숨겨진 보물을 발견했다고 생각한 두 사람은, 남은 항아리도 깨부수었다. 하지만 항아리 중 일곱 개는 텅 비어 있었고, 남은 하나에는 기대했던 보석이나 귀금속이 아니라, 낡아빠진 양피지의 두루마리가 열한 뭉치나 들어 있었다. 두 사람은 크게 실망했지만, 어쨌든 이것이라도 얼마간의 돈이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여 두루마리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들의 생각대로 두루마리는 몇 푼 안 되는 푼돈에 팔렸다. 두루마리를 사들인 중고품 중개인은 그중 다섯 개를 히브리대학에, 나머지 여섯 개를 그리스 정교회 성 마르코 수도원의 대주교에게 팔았다. 처음에 이들 두루마리는 거의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겨져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미국 오리엔트 연구소의 전문가가 성 마르코 수도원을 방문했을 때, 두루마리 중 히브리어로 씌어진 구약성서인 「이사야서」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게다가 고풍스러운 문체로 보아 씌어진 때가 그리스도 탄생 이전, 즉 기원전이 아닐까 하고 생각되었다.